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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샘의 문화탐색-노량진 사육신묘-1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2021-04-14 (수) 13:33 조회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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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묘는 왜 7기인가-8.hwp (20.0M), Down : 0, 2021-04-14 13:33:24

노량진 사육신묘에는 무덤이 일곱 기

금녕 김씨 대종회가 사육신묘를 지키고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

노량진 수산시장과 서울시 상수도본부 수도자재관리센터가 내려다보이고 한강철교와 63빌딩이 바라다 보이는 의절사 뒤편 야트막한 언덕에는 사육신묘가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육신묘와 인접한 도로변에는 김녕(金寧) 김씨(金氏) 문중인 종친회 건물이 밤낮으로 사육신묘를 지키고 있다.

(() -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 () - 흙을 쌓아 장식한 무덤.

() - 분과 달리 나무를 심지 않고 흙을 쌓지 않은 무덤.

() - 왕세자, 왕세자빈, 왕의 부모의 무덤.

() - 옛 무덤 중 규모가 크지만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천마총, 무용총)

언덕길을 5분간 오르다 보면 묘가 있는데 사육신의 묘가 6기가 아니라 어떻게 7기가 있는지 의아해하면서 역사 속으로 접어든다,

원래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 등 4기의 묘소만 있었는데, 1977년 성역화 사업 때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허묘를 만들어 총 7기의 묘가 현존하고 있다.

사육신과 연상되는 것은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 하위지, 유성원등 사육신과 김문기, 단종, 수양대군, 김질(金礩), 김시습, 남효온, 금녕 김씨, 김재규, 김영삼, 백범 김구선생님, 등으로 나열된다.

사육신묘는 조선 단종 복위에 목숨을 바친 여섯 충신을 위해 조성된 사육신공원이다.

사육신 묘역에는 사육신역사관, 한강철교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 홍살문, 불이문, 비각, 사당인 의절사, 사육신 묘소가 있다.

사육신은 단종 3(1455) 세종시절 신임이 두터웠던 성삼문·예조참판 하위지·형조참판 박팽년·직제학 이개·사예 유성원·도총부부총관 유응부(무관)등이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사건이다.

수양대군은 1453(계유정난) 그의 동생인 안평대군과 황보인, 김종서, 정분 등 3공을 숙청하여 권력을 독차지한 끝에 1455년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힐 것을 결의한다.

14566월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과 유응부가 국왕 양쪽으로 칼을 들고 지켜서는 별운검(別雲劍) 행사를 하는 것을 계기로 세조 일파를 처치하기로 했다. 이 사실이 당초 함께 모의에 가담했던 집현전 출신인 김질이 뒷일이 두려워 장인 정창손을 통해 세조에게 단종 복위 계획의 전모를 밀고하고 세조는 연루자를 모두 잡아들여 스스로 이들을 문초함으로서 막을 내린다,

사육신은 수양대군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여섯 명의 충신을, 생육신(청담파, 절의파: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온)은 불사이군(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원칙에 따라 벼슬을 버리고 살아서 절개를 지킨 여섯 인물을 뜻한다.

사육신으로 명명되어지는 것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때문이며 충절의 상징이 된 것은 추강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육신전(六臣傳)’에 기인한다. 14566월 과거공부를 하고 있던 매월당 김시습은 68일에 군기감(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성삼문·유응부·이개·하위지 등이 두 대의 수레로 사지가 찢기고 이미 옥중에서 죽은 박팽년과 집에서 자결한 유성원의 시신마저 거열(사지를 소달구지에 매달고 소의 힘으로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조실록에는 성삼문·이개·하위지·박중림·김문기·성승·유응부·권자신 등이 세조 앞에 끌려와서 국문을 당했는데, 세조는 백관들을 군기감 앞길에 모이게 하여 이개 등의 거열형을 보게 하고, 3일 동안 저잣거리에 효수(梟首)하였다. 또한 친자식들도 모조리 교형(絞刑)에 처하고, 어미와 딸·형제·자매들은 변방 고을의 노비로 보내라고 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세조실록 5권에 기록된 사육신 가족의 거취를 보면(세조 297) 박팽년(朴彭年)의 아내 옥금(玉今)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이개(李塏)의 아내 가지(加知)는 우참(右參贊) 강맹경(姜孟卿)에게, 류성원(柳誠源)의 아내 미치(未致딸 백대(百代)좌승지(左承旨) 한명회(韓明澮)에게, 하위지(河緯地)의 아내 귀금(貴今딸 목금(木今)은 지병조사(知兵曹事) 권언(權躽)에게, 유응부(兪應孚)의 아내 약비(若非)는 예빈시 윤(禮賓寺尹) 권반(權攀)에게, 김문기(金文起)아내 봉비(奉非)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유수(柳洙)에게, 딸 종(終山)은 대사헌(大司憲) 최항(崔恒)의 노비로 보내지게 된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김시습은 성삼문·박팽년·유응부·성승 등 다섯 시신(한 사람은 미상)을 수습해 노량진에 묻고 작은 돌로 묘표를 대신해서 오늘날 노량진에 사육신묘가 공원으로 조성하게 된 계기가 된다,

충절의 상징인 사육신으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추강 남효온이 세상을 떠돌다가 1489년 고향 의령에 머물며 병마로 몸도 가누기 힘들었으나 내가 죽는 것이 두려워 충신의 이름을 없어지게 할 수 있으랴하고 붓을 들어 박팽년·성삼문·하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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